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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설날 유래 풍속 음식 세배

gooday365 2021. 2. 1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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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설날 유래 풍속 음식 세배 

음력 정월 초하룻날을 설이라고 합니다

서양과 일본에서는 양력 1월1일이 새해이지만

우리 조상들은 음력으로 절기에 따라 농사를 짓고 모든일을

했으므로 음력 1월1일이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인것입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는 명절입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다는 문헌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때 양력설을 쇠라고 강제적으로 했으나 오랜전통에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양력1월1일을 왜놈설이라고 했습니다

양력설을 쇠는 정책은 광복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제도적으로 양력1월1일부터

3일 공휴일을 했으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음력1월1일에 설을 쇠는 고향친지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2중과세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기까지 하여 1985년 전두환정권시절에

민속의 날로 이름을 정하고 공휴일 되면서 귀향인파가 늘어나면서 본격적인 설이 다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섣달 그믐날은 까치설날이리고 하여,

어린아이들은 미리 설빔으로 갈아 입고, 어른들은 서로 찾아보고 인사하는데,

이것을 과세() 또는 ‘묵은세배’라고도 합니다.

아마도 정초에 바쁘기 때문에 미리 세배를 하는 풍속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려운 시절에는 어린이들은 설날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설날되면 새 옷을 부모님들이 사주셨고요

음식이 풍부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날 밤에 눈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합니다

그믐날 밤에 자면 눈썹이 희어 진다고 하여 밤을 세우는데,

이를 수세()한다고 합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설날 밤에

야광()이라는 귀신이 집에 와서 아이들의 신발을 신어 보고 발에 맞는 것을 신고 가면

그 아이에게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믿어, 신을 감추고 일찍 잔다고 합니다.

어릴때 추억이 형님 누나들이 일찍자면 도깨비가 신을 신고 간다고 하여

밤12시를 넘기려고 애썼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그믐날 이른 새벽에 처용(), 각귀(), 수성노인(), 닭, 호랑이 등과

같은 그림을 궁궐의 대문과 건물 창문에 붙여, 잡귀를 쫓는다고 하는데,

이것을 문배() 또는 세화()라고 부른다.

처용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문에 걸어 잡귀를 쫒는 풍속은 [용재총화]에 보이는데,

고려시대의 문헌인 일연의 [삼국유사]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풍속에 귀신쫒는데은 처용이 등장합니다

음력정월초하루부터 정월대보름까지를 설날이라고도 했습니다

정월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웃어른들을 찾아 봽고 인사를 세배라고 합니다

이때 세배돈을 받는 풍속이 1960-70대 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생겼습니다

그이전에는 떡과 과일을 내어놓았다고 합니다

정월보름날 이후는 연을 날리지 않는 관습이 있습니다

정월14일 이때까지 날리던 연의 줄을 끊어서 액을 날려버리기 때문입니다

정월대보름 이후 연을 날리면 우리네 시골에서는  무슨뜻인지 모르지만

백철놈이라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정월달에 또 보는것이 한해의 신수를 보는것입니다

토정비결을 보려 다니기도 하죠

토정 이지함 토정비결 무료 보기는 아래 사이트로 오시면 됩니다

gooday366.tistory.com/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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